사상체질의학치료의 중심
태양인 이제마 한의원은 동무 이제마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사상체질의학에 기초하여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원입니다.

체질이란?

1. 체질 그리고 음식, 약?

내 몸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이 따로 존재

사람에게는 본래 자기 몸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내 몸이 건강해지고,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병이 된다. 이것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체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체질을 연구하다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물이 인간의 몸에 맞으면 약이 되고 몸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되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자기에게 알맞지 않는 음식을 장기간 오래 먹으면 반드시 몸에 해로운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피가 탁해지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성격이 급해지거나 느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나에게 알맞지 않는 음식을 그래도 계속해서 먹으면 의학적으로 표현해서 질환이 시작되는 셈이다.

건강보조식품의 남용은 건강을 악화시킬 수도 있어

게다가 최근에는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건강보조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 TV홈쇼핑과 광고 등에서 각종 건강보조식품이 난무하고 있는데 체질에 맞지 않는 건강보조식품의 남용은 건강을 악화시키고 내 몸을 질병상태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내 몸에 맞지 않는 건강보조식품의 악영향은 먹고서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축적되어 서서히 나타남으로써 본인은 건강이 악화된 원인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 더욱더 위험한 일이라고 하겠다. 식품도 자기 체질에 맞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고 진리인데도 아무 식품이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좋다고 떠든다고 마구 먹다가는 종국에는 큰일이 벌어진다.

체질에 맞지 않는 약은 백약이 독약으로

한약재도 음식과 비슷해서 자기 체질에 알맞은 약재가 있고 자기 체질에 전혀 맞지 않는 한약이 있다. 세간의 건강상식 중에서 인삼, 녹용, 꿀 등도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젠 보편적인 상식으로 통한다. 인삼과 꿀은 소음인에게는 보약이지만 소양인에게는 거의 독약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인삼은 그 성질이 따뜻하고 뜨겁기 때문에 소양인의 몸에 들어가면 (소양인은 본래부터 속열이 많은 체질이라) 오히려 해롭다.

즉, 인삼은 소음인에게는 소화제와 몸을 데워주는 보약으로 작용하지만 소양인에게는 변비와 두통을 야기시키는 약재인 것이다. 녹용도 태음인에게는 보약으로 작용하지만 소양인과 소음인에게는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불편한 통증이나 두통과 변비, 비만을 유발한다. 하나의 약재나 음식물이 보약으로 작용하느냐 독약으로 작용하느냐는 자기 체질에 맞는 약을 먹으면 약이 되고 맞지 않는 약을 먹으면 독이 되는 이치인 것이다.

같은 초식성인 소, 염소, 토끼도 제각기 먹는 풀이 따로 있어

초식성인 소, 염소, 토끼 등도 제각기 초식이긴 하지만 아무풀이나 먹지는 않는다. 소, 염소, 토끼가 먹는 고유의 풀이 따로 존재한다. 또한 토끼와 염소가 좋아하는 향기와 사람이 좋아하는 향기가 엄연히 다르게 존재한다. 사람이 먹는 풀과 짐승이 먹는 풀의 종류가 다르고 같은 짐승이라도 토끼와 소가 먹는 풀이 다르다. 짐승들도 엄밀하게 따지면 체질을 분류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는 풀의 종류에 따라 건강해지느냐 병이 되느냐의 차이를 낸다.

향기 또한 사람마다 좋아하는 향기와 싫어하는 향기가 있어 이 또한 몸에 해로우냐 이로우냐의 중요한 갈림 요소가 된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어리거나 육체적으로 미숙하다 하여도 동물들은 본능적 감각이 살아 있어서 비록 송아지나 아기 염소, 토끼라 하더라도 자기에게 해로운 풀은 절대 뜯어 먹지 아니한다. 예를 들어 토끼는 열이 굉장히 많은 동물이라 사람 몸에 이로운 쑥이나 열이 많은 풀을 토끼에게 먹이면 토끼 눈이 더욱 빨개지면서 애처롭게 죽어버린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익한 먹이와 해로운 먹이를 알고 있다.

이것은 즉, 동물은 누구나 자기에게 해롭거나 유익한 풀의 종류를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결론이다. 송아지, 그리고 아기 염소 등의 초식동물은 이미 자기에게 유익한 먹이와 해로운 먹이를 본능적 감각으로 알고 있음으로 해서 자연 상태의 동물들에겐 병원과 약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육을 목적으로 합성 사료를 먹이고 호르몬제나 항생제를 포함한 사료를 먹임으로써 인간뿐만 아니라 가축들은 그 본성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더욱 무서운 것은 스트레스에 찌들린 상태의 육류 식품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생활은 이미 서구화되어, 체질에 상관없이 육식을 즐기는 현대인들은 이런 건강하지 못한 육류를 즐겨 먹는데 그러고서도 어찌 건강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몸과 마음도 똑같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 문명의 발달이 긴요한 본능적 감각을 잃게 만들어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동물들에겐 살아있는 본능적 감각이 사라진 걸까? 이는 인간이 문자와 언어의 발명으로 인간에게 문명과 문화가 생겨남으로써 본능보다는 문명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긴요한 본능적 감각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 또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병원과 의료 없이 살아온 역사가 가히 지대하리만치 오래되었다, 인간의 역사 중에서 병을 병이라 칭한 지는 이제 겨우 수천년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 없이 살아온 것이 실로 수 백 만 년을 헤아리는 것이다. 또한 약을 조제하기 시작한 것은 더더구나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의서와 의술을 갖기 시작한 것 또한 수 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의학 서적을 가지게 된 것은 인류사 전체의 길이와 비교한다면 실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인 셈이다. 대략 인류사를 3,800,000년이라고 본다면 최초의 의학서적은 약 5000년 전에 비로소 등장한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

자기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음식 만을 먹고서는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 “무슨 음식이든지간에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말임을 인식해야 한다. 의사들은 과연 아무 음식이나 골고루 먹느냐? 아니다. 절대로 아무음식이나 골고루 먹지 않는다. 골라서, 철저히 골라서 먹는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라는 격언 비슷한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하고 사라지고 나서야 건강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고 내 몸에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고야 만다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몸에 열이 항상 상존하는 체질의 사람이 인삼이나 고추, 후추를 먹고 나아가 마늘이나 양파를 계속해서 먹어보라. 그리고 찰떡이나 피자, 닭고기를 즐겨 계속해서 먹으면 항시 변비기가 올 것이고 항시 짜증이 날 것이고 마음이 급해질 것이다. 나아가 수양이 잘 안되면 난폭해져서 주위로부터 별난 사람으로 잔소리꾼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성질이 급하고 고함 잘 치고 참을성 없이 행동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몸에 열이 상존하는 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람은 무엇이 잘못되면 항상 일단 남의 탓을 하는 습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몸에 열이 많기 때문에 고함치고 짜증을 부려야 자기 몸에 열을 발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몸은 곧 진리

몸은 진리다.
몸은 반드시 진리적 계측기이다. 몸은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이 들어오면 그냥 두지만 맞지 않는 음식이 들어오면 반드시 반응을 한다. 몸은 반응한다. 정확하게 반응한다. 몸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건강하고 몸에 안 맞는 음식은 병을 부르고 그래도 계속 먹으면 염증이 되고 옹이가 되고 나아가 암을 만든다. 암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내 몸에 좋은 정기(正氣)의 양보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사기(邪氣)의 양이 많아지게 되어 몸은 항생력을 잃고 자생력이 무너지게 된다. 그 결과 염증이 생기고 더 나아가 궤양이 되고 옹이가 되어 마침내 결정의 형태인 암으로 나타난다. 많은 암환자의 경우 자기 몸의 반응을 무시하고 방치 내지 안이하게 대처하여 큰 병을 만든 경우가 많다.

약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병이 나면 약도 자기 몸에 맞는 약을 먹어야 병이 치료되는 것이지 몸에 맞지도 않는 약을 먹어봐야 병이 낫기는커녕 더욱 더 병이 커질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체질 중에 태양인이 인삼과 녹용을 잔뜩 넣어서 보약을 먹으면 몸이 보해지기는커녕 몸이 나빠지고 정신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나중에 녹용과 인삼과 꿀을 좋다고 해서 계속 먹으면 광기를 부리고 결국에는 몸이 망가지고 단명하고 만다.
결론은 간단하다. 몸에 맞으면 건강하고 맞지 않으면 병이 온다, 건강해지느냐 환자가 되느냐는 음식과 약에 달려 있다, 음식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물론 약도 마찬가지이다.

2. 체질감별과 체질처방

체질처방은 정확한 체질감별이 우선되어야...

병이 발생했을 때 내 몸에 알맞은 한약을 먹으면 반드시 낫는다. 그러나 내 몸에 맞지 않는 약재를 처방해서 쓰면 병이 낫기는커녕 더욱더 악화된다. 그래서 내 몸에 알맞은 처방을 내린다는 것은 반드시 체질이 정해져야만 하고 그 후에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정확한 체질을 판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 체격, 골상, 관상, 성품과 성격, 병의 증상과 맥진, 설진등 많은 변수를 참고하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체질을 감별한다는 것은 의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의사는 체질을 무조건하고 감별해야하는데 그 감별이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 정확하지 않으면 백약이 독약이 된다.

한의사로써 체질을 감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또한 체질방은 체질감별이 정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강력한 부작용에 부딪치게 된다. 부작용을 현실적으로 한의사가 만나게 되면 매우 당황하고 겁을 먹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 체질방을 포기하고 소위 말해서 후세방(동의보감처방)을 어쩔 수 없이 선호하게 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체질방은 후세방이 나온 이후에 창안된 처방으로서 후세방에 비해서 굉장히 정교하고 날카로운 처방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체질에 맞는 약이 처방되면 후세방에 비래서 약효가 탁월한 반면 체질에 맞지 않는 약이 처방되면 그 부작용도 강력해서 체질감별에 대해 자신감이 있어야 체질방을 처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확한 체질감별과 체질처방의 현실적 어려움

사상체질에 대한 지식이 요즘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고 일반인들도 체질에 관한 관심은 높으나 실제로 정확한 체질감별의 전문가가 극소수로 존재하고 아직도 완전한 전문가의 숫자가 몇 명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체질 감별의 완전함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고서야 사람을 보고 즉시 체질을 감별할 수 있다. 그만큼 체질감별은 직관이 뛰어나야하고 현실적으로 임상경험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야 정확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체질감별을 정확하게 했다 하더라도 약의 처방에 들어가면 같은 체질 내에서도 한(寒),열(熱)을 구분해야 하고 온(溫),량(凉)을 또한 구분해야 하는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한을 다시 표현하면 차가움을 말하며 열을 다시 표현하면 뜨거움을 말하고 온은 따뜻함을 나타내며 량은 서늘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체질을 감별할 때 먼저 溫熱凉寒(온열량한)을 구분했다 하더라도 다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은 같은 체질 내에서도 허 체질과 실체질을 구분해야하고 허실 속에서도 다시 선천적 허약체질과 후천적 허약체질(虛弱體質) 또 나아가 선천적 강력체질과 후천적 강력체질로 또다시 구분해야한다. 그 후에도 전강(前强)체질과 후강(後强)체질로 구분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금 현재의 찰색(察色)을 구분하여 최종 정리 판단한다. 이렇게 표현하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하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고 또한 헷갈리는 것이 체질감별과 체질처방의 현실적 어려움이다.

3. 체질의학의 궁극적 목적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체질의학의 궁극적 목적은 몸이 알아서 즉, 몸에 해로운 경우는 몸이 알아서 강력한 거부반응을 하게 하여 그 몸에 해로운 음식과 약을 못 먹게 하여 인체를 완전히 건강상태로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체질의학은 인체로 하여금 인체가 알아서 인체에 해로운 음식과 약을 자연적으로 거부케 하고 나아가 몸에 해로운 음식이나 약이 들어 왔을 때 격렬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여 두 번 다시 몸에 해로운 음식물이 못 들어오게 하는, 다시 얘기하면 그러한 본능적 감각기능을 복원케 하려는 것이 그 목표이다. 말하자면 체질의학은 그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몸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어서 다시는 몸에 해로운 음식물을 못 먹게 하려고 하는 기전(mechanism)을 생성케 하려함이 궁극적 목적이다. 그래서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이는 것이다.

체질약의 효능

체질의학은 인간 육신의 수많은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 체질약은 약의 효능이 나타날 적에 몸이 반응하기를 아주 좋은 반응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아주 나쁘게 나타난다. 첫째로 몸이 나빠지는 경우는 약을 먹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나빠져서 안 아픈 부위나 없던 증세가 나타나서 더욱더 악화된 기분을 느낀다. 약을 먹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아픈 경우이다. 이 경우에도 몸이 실제로 나빠지는 경우는 드물고 이 증세를 의사에게 말하면 바로 약이 교체되고 치료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둘째로 약을 먹으면 훨씬 좋아지고 특효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약을 먹자마자 며칠이 안 되어 아주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그 약을 계속해서 먹으면 된다. 그러면 병이 나음은 물론이고 병의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몸이 가볍고 피부가 좋아지고 몸이 가뿐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약을 몇 제 복용하면 우선 음식에 있어서 식성의 변화가 오게 된다. 예를 들어 약을 복용하기 전의 소양인이 소고기를 즐겨 먹었다면 체질약을 복용한지 한두 달이 지나면 그렇게 맛있던 소고기가 맛이 없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돼지고기가 고소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은 소양인에게 유익한 육류는 본래 돼지고기인데 소고기를 많이 먹다 보니 소고기에게 중독되어 있다가 체질약을 복용함으로써 몸의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게 되니 소고기는 맛이 없고 돼지고기가 맛있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중독은 소고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소고기의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양인에겐 거의 독에 가깝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양인은 위열이 상존하는 체질이기에 소고기를 장기간 즐겨 먹게 되면 그렇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체질약은 몸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불치병을 예방하고 자연적 건강상태로 천수를 누릴 수 있게 한다. 체질의 처방이 정확하면 사람이 변한다. 어떻게 변하느냐하면 아주 좋게 변화해간다. 육체적 건강상태의 호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주위에서 성격도 변했다는 평을 듣게 된다. 체질의 처방을 장기간 받게 되면 습관이 바뀌고 신념이 변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체질이 변화하여 그 모습이 유지된다. 지난날 잘 먹던 음식이 먹기 싫어 졌다면 그 음식은 거의 그 몸에 안 맞았던 음식인 것이다. 새로이 먹고 싶어진 음식의 종류가 발생했다면 그 음식은 몸에 매우 유익한 음식인 것이다.

인간고유의 자연치유력을 확보하고 섬세한 분별력을 재생시키는 체질의학

건강한 몸은 자기에게 해로운 음식을 거부하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 건강한 몸은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반응을 한다. 예를 들면 방귀가 난다든지, 속이 거북하다든지, 몸이 무겁다든지, 물이 많이 먹고 싶어진다던지, 아니면 잠이 온다든지 하는 등등의 반응을 나타낸다. 몸은 영민하게도 해롭거나 지나치거나 모자람의 반응을 반드시 그리고 분명하게 나타내는데도 인간은 미련하리만치 그 반응에 무신경하다. 이것이 병으로 가는 단서가 되는 것이며 사실상 여기에서 질병은 시작되는 것이다. 몸의 반응은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반응한다.

몸은 매우 지혜롭다. 몸은 지극히 공평하고 무사심하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몸은 자기에게 해로운 음식과 해로운 감정을 구별하는데 있어 절대로 무사심하고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체질의학이란 인간의 고유의 자연치유력을 확보하고 자기에게 해로운 먹이를 피하는 섬세한 분별력을 재생시키는 학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이 즐거워하는 음식을 즐길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 몸이 즐거워하는 음식, 즉 체질에 맞는 음식을 분별해서 계속해서 먹으면 몸이 건강해짐은 물론이고 나아가 불치병에서 완전하리만큼 벗어날 수가 있다.

4. 체질의학적 관점에서 본 현대의 질병

현대사회에서 물질적 풍요 속에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의 성과가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인류를 위협하는 암이나 당뇨병, 루프스, 에이즈, 각종 알러지 질환과 같은 난치병, 불치병이 인류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체질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본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질병의 원인으로...
  1. 첫째, 음식은 비록 약성이 미미하지만 매일매일 쉴 새 없이 그리고 일평생을 통하여 습관화된 특정 음식을 수 십 년간 섭취하게 되므로 우리의 인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연속해서 수 십 년간 계속해서 먹게 되면 몸의 건강한 체계가 대응을 하다가하다가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건강한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내성이 생기며 몸 안의 이상변이가 생겨나게 되어 암,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의 불치병이 된다고 본다.
  2. 둘째, 자기 체질의 기운에 어긋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계속 노출되어 있을 때가 문제이다.
    1. 예를 들면 소음인은 심장이 작은 소음인이 많은데(이른바 소심하다고 하는 부분이다) 이런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체질적으로 스트레스에 특히 약하다. 직장에서나 가족 중에 막말을 잘하는 동료나 가족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막말을 자꾸만 해댄다면 이 사람은 결코 견디지 못하여 자기체질에 맞지 않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자기체질에 맞지 않은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되면 이 사람은 십중팔구 심장성으로 인한 중기병(中氣病)이나 소화불량이 온다는 것이다. 소음인중에 특히 심장이 작은 소음인의 경우는 신경성 질병에 특히 약하고 이런 사람의 경우에 수양이 안 된 사람을 만날 경우 십중팔구 신경쇠약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의 주장이 강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대화나 타협이 안 될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이때의 울결되는 기운에 의해 이른바 ‘홧병’이 시작된다. 잘못된 식습관과 내 몸의 울결된 기운과 기분이 내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2. 이제 몸 본연의 기능에 맞는 약과 음식을 잘 가려 먹으면서 자신의 체질적 성품에 따라 적절하게 사고하고 욕심 부리지 말고 정서적인 안정을 유지하자. 그러면 절대로 병이 들지 않는다.
    3. 건강한 몸은 신기하리만치 자기에게 해로운 음식과 약을 알아낸다. 이것은 본능에 의한 인체의 적응력이다. 이것은 모든 생물에게 있는 일반적 능력이다. 절대로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산속에서 수도하는 분들은 약간의 수련을 통해서도 거의 자기 몸에 해로운 음식물은 후각을 통해서나 혀의 감각으로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TV나 매스컴을 통해서 어느 병에 어떤 음식물이 좋다 하니까 우루루 따라 먹다 병이 나는 경우가 더 많다. 체질에 상관없이 오가피나 인삼이나 홍삼, 산수유나 유황오리, 개소주 등을 계속 복용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누적된 화가 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4. 매스컴의 기자가 TV나 신문에서 보도하면 확실한 경우로 오인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보도하는 기자나 심지어 의사 자신까지도 체질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자기에게 나쁜 음식을 스스럼없이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5. 의사라 하더라도 체질을 무시하고 또는 체질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불치병과 성인병에 노출되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가 일반인보다 더 혈색이 안 좋아지거나 나아가 일찍 사망하는 것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

5. 이제마의 사상체질의학

동일한 병증을 나타내더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 해야 한다.

1894년 조선의 의학자 동무(東武 ) 이제마(李濟馬 )선생께서는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저술함으로써 사상의학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창안하셨다. 이 이론의 핵심은 ‘동일한 병증을 나타내더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전까지의 의학이론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배가 아프면 복통약을 처방하고 그 병증에 따라 치료했는데 이를 소위 증치의학(證治醫學)이라고 한다. 한의학의 발생 때부터 동무 이제마 선생까지의 한의학의 이론은 소위 증치의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무 이제마 선생은 사상의학이라는 전대미문이자 세계최초이고 한의학에서조차 처음으로 그때까지의 증치의학의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사상체질의학이라는 것을 발명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업적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것이 인류사에 더할 수 없는 대업이듯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위업이듯이, 동무 이제마 선생님의 사상체질의학의 발견은 현대 문명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사상체질의 개념과 특징

동무 이제마 선생은 인간의 체질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라는 네 가지로 분류하셨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체질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 체질이라는 말이 있다. 봄철에 꽃가루가 많이 날릴 때 재채기를 하거나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들, 만성적으로 비염이나 천식이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알레르기 체질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떤 물질에 대해 신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를 말한다. 또, 흔히 산성체질, 알칼리성 체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러한 표현은 체액의 성분을 화학적 특성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이란 이러한 표현과는 다른 이론적 바탕이 있다. 즉, 사상의학에서는 사람은 일평생 바뀌지 않는 장부의 대소, 강약을 갖고 태어나며 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장부 대소, 강약의 차이는 사람의 신체구조와 외관에도 영향을 주어서 체질별로 독특한 외모를 갖게 하고 사물에 대한 정신적 반응도 다르게 나타나 체질마다 다른 기질을 갖게 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사람마다 생리, 병리 현상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질병에 대한 치료법과 약처방, 더 나아가서 양생볍 또한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체질 따라서 장부의 대소, 강약이 다르고 정서적 상태도 달라

동무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에 의하면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자를 일컬어 태양인이라 하고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자를 태음인이라 한다. 비장이 크고 신장이 작은 자를 일컬어 소양인이라 하고 신장이 크고 비장이 작은 자를 소음인이라 한다. 또한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정서적 상태도 체질마다 다르고 이러한 정서적 상태가 질병의 원인이 되는데 같은 병증이라도 사람의 마음과 타고난 성질의 차이로 인해서 그 병의 기전이 다르게 나타남을 주장한 부분은 세계적으로도 최초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발견이며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마 선생이 쓰신 동의수세보원의 원문을 인용해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태양인은 매번 어떤 일을 얻으려고 하나 얻지 못하여 분하고 화나는 마음이 항시 가슴속에 스며있다.”라고 했으며 “태음인은 항상 크게 일을 할려고 하는 마음이 존재함으로 겁나고 무서운 마음이 가슴속에 항상 스며있다” 라고 하였으며 “소양인은 크게 일을 얻어 보려고 하나 얻지 못하여 항시 근심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스며있다”라고 했으며 “소음인은 매번 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즐거움만을(몸의 문제) 좋아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스며있다”라고 했다.

또한 태양인에게는 급박지심(急迫之心, 마음이 항상 급함)이, 태음인에게는 겁심(怯心, 겁이 많아서 무슨 일을 하든지 조심스러움)이, 소양인에게는 구심(懼心, 의심이 많아서 남을 잘 믿지 않으며 경계함)이, 소음인에게는 불안정지심(不安定之心, 마음이 불안정하여 좌불안석이 됨)이 항상 존재한다고 했다. 성격은 태양인은 화통하고 직선적이어서 정신적인 세계에 매우 가치를 크게 둔다. 소양인은 매우 용맹스럽고 일을 일으키기는 잘하나 마무리에 능하지 못하고 태양인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이익과 체면, 명예 등에 주로 얽매인다. 태음인과 소음인은 주로 몸의 문제와 물질적인 문제에 주로 얽매인다. 태양인과 소양인은 음양 중에서 양인에 속하며 태음인과 소음인은 음양 중에서 음인에 속한다.

나쁜 체질, 좋은 체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한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체질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는 설과 체질은 변할 수 있다는 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은 평생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며 간혹 ‘체질이 변하나요?’라고 질문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체질이 변한다는 것은 나쁜 상태에서 건강한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타고난 체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네 가지 사상체질 중에 나쁜 체질과 좋은 체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잘 수양하고 그 몸을 바로 하고서 평생을 지나치게 과하게 행하거나 지나치게 모자라지 않게 심신을 잘 수양하면 어떤 체질이라도 몸과 마음이 다같이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 체질의 본래적 생리이다. 병이 나도 체질을 먼저 감별한 후에 체질에 따라 처방을 하고 체질에 맞게 치료하면 그야말로 신통하리만큼 잘 낫는 것이 체질의학이다.

6. 체질의학의 적용

체질을 안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나 알고 난 후에는 새로운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체질은 생활 전반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체질의 이해는 기업경영이나 가정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예를 들어 기업의 인사관리나 인력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데 일반 기업체에도 체질의 특성에 따라서 더욱 잘 맞게 인사정책을 수립하고 영업방향을 정해야 무리 없이 효율적으로 기업을 경영해나갈 수 있다. 즉,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구성원의 성향, 기질, 재능 및 소질 등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사상체질은 이러한 경우에 대단히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다. 사람의 소질은 훈련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어느 정도 개발 될 수 있다고 하여도 선천적 재능과 기질 및 신체조건 등을 미리 고려하면 인력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가족을 대할 적에도 체질에 따라서 가족을 대해야만 가정 내의 평화와 안정된 가정이 유지되지 체질을 무시하고서 일방적 사회적 통념이나 윤리적 기준이나 상식만을 강요한다면 가족간에도 불화와 분쟁이 속발할 것이다.

부부간에도 체질에 따라 생각이나 견해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견해의 차이와 신념의 차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엄청난 차이를 느낄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하였다하여도 자기가족의 체질을 낱낱이 잘 파악하여야 가정의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고 나아가 쓸데없는 불화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소음인에게 아무리 적극적으로 대중 앞에서 주도적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자녀에게 호소하여도 그 자녀는 대중 앞에서 적극적으로 하기엔 체질적 특성이 앞에 나서는 것은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체질이기 때문에 이점을 고려하여 자녀를 교육시켜야 자녀와 충돌과 갈등 없이 존경받는 부모로써 교육시킬 수 있다.

소음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심하고 조용한 점이 특징인데 본인이 앞장서서 하기보다는 앞장을 잘서는 소양인을 친구로 사귀게 하면 매우 유효한 교육의 요령이 될 수 있다. 치밀하고 꼼꼼한 소음인은 근래에 각광받는 IT산업의 엔지니어가 잘 맞다고 보여진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소양인은 외형을 중시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기에 대인관계를 직접 하는 일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소양인은 술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데 술을 자꾸 권하면 술을 먹고서 주사를 부릴 수 있다.

체질을 고려한 의료체계의 개혁이 절실해...

체질은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하는 고급적이고 아주 치밀한 기초적 섭리적 이론이다. 체질을 무시한 지도력이나 이념은 얼마가지 않아서 지키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작용과 갈등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속성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과 한의학 그리고 대체의학 등 의학의 전반이 인간의 개체적 특성을 중시하는 체계보다는 전체적 특성을 중시하는 사고 체계에 따라서 전해오고 있고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의학체계를 전면 수정하여 개체적 본성에 적합한 의료체계로 개혁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개체적 본성과 개체적 병인이 존재하고 개체적 치료원칙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 사고에 의한 일괄적 치료원칙은 반드시 개혁되고 보완해야 할 과업인 것이다. 인간의 병의 발생원인이 개체적으로 분명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전체적 종합적 치료원칙으로 치료를 계속한다는 것은 인류적 관념의 체계인 도덕적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불합리적 처사이고 반인류적 작태임이 분명하다.

체질에 맞는 보건정책과 건강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사람은 사람마다 타고난 태성이 다르고 병의 발생원인이 완연히 다르다. 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체질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같은 두통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원인이 다르고 치료의 방법이 다르고 치료약도 분명히 다르다. 또한 사람마다 일상생활에서 먹는 음식물도 엄연히 다르다.

한 국가의 보건을 담당하는 정책 입안자는 사람마다 엄연히 다른 체질의 기준을 제시하고 체질에 알맞은 보건의 방책을 제시해야함은 물론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을 위한 보건정책일 것이다. 체질에 맞는 음식물의 섭취는 건강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건강을 확보하는 완벽한 최대의 방어책인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짜는 비용은 정부에서 담당함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 프로그램으로부터 파생되는 부가이득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의 이익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체질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한 음식물의 섭취는 국민들이 완전하게 건강을 보호받을 수 있는 완벽한 프로그램이고 나아가 정부에서 몇 백억의 예산으로 체질 프로젝트를 확보하고 이 프로젝트에 따라서 국민의 보건을 책임진다면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함은 물론 치료비의 허실을 줄임은 금액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이익을 창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병원을 증설하지 않아도 됨은 물론 국민들이 지금처럼 이토록 많이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대적 질병발생의 근본적 대책은 체질치료에 그 해답이...

지금의 국민들이 이토록 많이 병원을 찾는 것은 분명히 정부의 보건 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건강에 대한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지혜가 부족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고치지 않고 치료만을 역점을 둔다면 이것은 결국엔 지혜부족이라는 결론이 분명하다. 이토록 많은 병원이 필요한지 왜 이토록 많은 질병이 발생하는지 이것을 알아내야만 한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환자를 담당해야 하는 의사들조차도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병에 대한 공포로부터 확실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뭔가 정부의 보건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병이라는 것은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고 원인은 현대의 정부조직의 역량이라면 쉽게 정복이 될 텐데 이것을 방치하기보다는 근본적 대책을 세워서 개선함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책의 실마리가 분명 체질에 의한 치료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전체적 치료방식의 답습은 매우 불안전한 의료정책이라고 봐야...

체질에 의한 처방약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개인적 고유의 특징과 특성을 엄격하게 분별하여 개인적 처방을 하자는 것이며 전체적 처방방식을 엄히 반대하는 또 하나의 독특한 처방식이라 보면 된다. 전체적 치료방식이 아닌 개개인의 개체적 체질을 분별하여 처방을 개인마다 치료약이 다른 유별적 치료방식이다.

다시 얘기하면 전체적 처방과 치료방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치료방식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성과와 효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으며 그 업적은 현대의학의 놀라운 신기원이라 할만하나 그래도 유별적 개체적 치료방식으로 접근해야 치료가 되고 완치가 되는 것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치료방식을 답습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나아가 의료체계와 의료정책에 있어서 불안전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어떤 약물을 누구에게나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삼이라도 인삼을 쉽게 받아들이는 체질과 인삼을 거부하는 체질을 구분하여 처방하자는 방식이다. 인삼을 거부하는 체질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치료방식대로 인삼을 보약으로 처방하여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음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는 치료방식이 체질 처방방식이다.

7. 체질의 중요성

체질은 최대의 인체 이데올로기

체질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생각함에 있어서 고려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체질은 인간의 몸에 확실하고도 정확하게 작동하는 몸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도 육신을 가진 이상 체질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체질은 이념과 윤리, 그리고 상식과 보편적 가치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천리적이며 섭리적인, 인간 본성의 최대의 인체 이데올로기이다. 체질을 알고서 인체를 보는 것과 체질을 모르고서 인체를 보는 것과는 한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체질은 몸에 작용하는 우주질서

몸은 체질이라는 생리에 따라서 순환하는 우주질서를 갖고 있다.

몸은 애노희락애오욕(哀怒喜樂愛惡慾)이라는 본성(本性)과 본정(本情)을 갖고 우주를 순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몸에는 인간사회의 모든 관념적 사고체계와 윤리적 도덕적 원리를 우선하는 생리가 존재한다. 체질은 인체와 마음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생성원리요, 우주 운행의 섭리적 원론이다. 인간의 몸을 통하지 않고 우주를 인식할 수 없고 몸을 통하지 않고 신을 인식할 수 없음이다.

사람의 눈이 아무리 밝다 하더라도 세균의 존재를 현미경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균을 인식할 수 없듯이 사람의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주를 인식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신의 존재 또한 전혀 인식할 수 없음이다. 인간은 애노희락(哀怒喜樂)을 통하지 않고 감정을 나타낼 수 없고 애노희락은 인간의 몸에만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인체는 우주에 있어서 그 중심이며 인체를 통하지 않는 인식체계는 사실상 무의미한 인식체계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체계이며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무의미해질 뿐이다.

몸이 없는 우주와 몸이 없는 신이 존재, 그리고 몸이 없는 이론은 그 어디에도 쓸데없는 황당무개한 공론이다. 몸이 없는 우주론과 창조론은 사실상 인식체계를 이용한 사기이며 기만이요 세뇌의 작업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신 또한 몸을 통해서만이 인식되어질 뿐이고 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오직 몸뿐이다. 몸을 떠난 신을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되어지지도 않는다. 몸은 신이 머물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우주의 본체요, 본성이요, 중심이다. 몸은 그래서 신보다 우선한다. 몸은 신을 넘어선 우주창조의 중심이다. 몸이 있은 후 신이 존재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체질은 모든 의식세계를 초월한 근본적 개념이며 생리적 섭리

체질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 존재하는 최고의 인식체계이며 최고의 질서이론이며 윤리,도덕,사회,문화,정치,상식,보편적가치등에 우선하는 생리적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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