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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모리스 드니, 원근법보다 더 깊은 평면성의 창조
작성자문희 @ 2019.12.02 16:57:38

모리스 드니, 뮤즈들


유럽 미술에서 19세기 후반은 정말 흥미 있는 시대이다이전까지 정해진 틀에 의해 비슷한 테마비슷한 인상만을 주던 그림들이 갑자기 다양해지고화가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작품 수부터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그 속에 우리들이 알고 있던 유명한 화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인상파의 모네와 르느와르드가 들이 그렇고 고갱이나 고흐 그리고 로댕과 클림트까지작가들의 개성과 창조력이 넘치는 시대라고 한다면 바로 이때를 떠올릴 만큼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미술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 나타났던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하려 한 또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뮤즈들이라는 이 그림을 그린 모리스 드니가 그 주인공이다.
 
오르세는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인공 여성들을 동시대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화가 모리스 드니는 전통 신화의 주제였던 뮤즈라는 존재를 현대화한다뮤즈란 예술과 과학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말 그대로 여신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던 흔한 소재였으나모리스 드니는 그것을 근본부터 바꿔놓았다여기에 나오는 뮤즈들은 원래 지닌 능력이나 임무를 상징하는 어떤 장치도 없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미술관의 소개 글을 그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이 경우도 설명이 조금은 과장된 듯하다드니가 동시대 옷을 입은 여성들을 그리면서 뮤즈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데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야기 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느낌이다.
 
다만 그림의 색감그리고 분위기가 좀 독특하다약간 희미한 듯한 화면 처리전체적으로 갈색을 띠어 나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자연의 색깔이 바랜 듯이 보이는 것그리고 세 여성 얼굴의 묘한 표정까지이 그림을 그린 모리스 드니는 어떤 화가였을까?
 
그는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세뤼지에와 비야르를 만나 친구가 되었고나중에 고갱을 존경해 그가 칩거한 퐁타방까지 따라갔던 소장파 그룹 나비파의 일원이었다이스라엘어로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가 붙은 이들은 세상에 없던 색깔세상에 없는 장소를 그림으로 묘사하고자 한어떤 부분에서는 신비주의자상징주의자들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주관적인 감성에 집중한 화가들이다.
 

모리스 드니, 자화상


그중 드니는 루브르를 다니면서 완고했던 당시 전통주의자들의 교육보다 더 오래된 거장들을 찾아 그들의 그림을 연구하고 모사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그가 특히 끌렸던 작가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였다아직 견고하게 고정되지 않은 원근법과 벽화 같은 느낌그리고 뭔가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든 드니는 자신의 작품에도 이 점을 열심히 반영한다뒤이어 잠시 사사한 퓌비 드 샤반에게서도 벽에 그리는 느낌 같은 표현과 고풍스럽고 독특한 채색을 배웠기에드니의 작품들에서 많이 풍기는 벽화같이 장식적인 느낌은 유래가 있다이 그림에서도 소위 뮤즈들’ 뒤에 보이는 나무들은 원근법을 적용해 배치한 것이 아니라 마치 앞으로 끌어당겨 같은 선에 붙인 것 같다공간감보다는 평면적인 느낌을 강조한 셈이다원래 벽화는 (퓌비 드 샤반의 경우처럼공공미술의 성격이 강한데이 그림은 평면적이고 단순한 표현으로 벽화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개인적이다.
 
당시 모리스 드니를 알던 사람들은 그림 제일 앞에 모델이 그의 아내 마르트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그녀는 1893년 결혼 후 드니가 사망할 때까지 줄곧 그의 뮤즈였다심지어 이 그림에서 마르트는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과 옆모습으로 두 차례 그려진 것이라고나중에 화가가 남긴 글에서 밝혀지기도 한다. (아내를 세 번 반복해서 그려넣은 것이다.) 그림의 배경은 드니가 평생을 살았던 고향 생 제르망 앙레의 숲이다수백 살 된 마로니에 나무들은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그것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장식 미술처럼 그려져 있다.
 

모리스 드니, la_dama_nel_giardino_(nudo_con_bouquet_di_violette)(1894)


전통에 반하는 미학을 만들려 한 많은 작가들처럼모리스 드니 역시 학교의 가르침을 거부했다드니는 원근법이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게 된다거리감이나 공간감이 없는 이 그림의 평면성은 의도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도 튀는 색깔이 없이 모든 부분이 일정하고 명상적이다조용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땅에 있는 떨어진 낙엽들도 나무 줄기와 사람들이 그렇듯 곡선으로 전체의 조화를 맞추고 있고어쩌면 태피스트리에 인쇄된 것 같은 인물들은 19세기 후반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도 고풍스럽다.
 
모리스 드니에게 영감을 주는 그의 뮤즈들은 그래픽 디자인 같은 세계 안에 가을 색깔을 띠고 있지만 이 세상 느낌이 아닌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원근감이 사라진 신비한 느낌 속에 이 숲은 성스러운 생명의 나무가 있는 곳은 아닐까뒤쪽으로 사라지는 뮤즈들을 포함한 10명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무심한 신비로움이 이 그림의 모든 것이다.
 
오르세가 설명하는 생명의 나무는 초현실주의자나 상징주의자혹은 아르누보 예술가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신비와 상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전통적인 크리스트교 사회에 은근히 반하는 흐름이기도 했다그렇게 보면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는 이 그림도 실은 수많은 도전과 연구그리고 굳은 결심으로 빚어낸 하나의 선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보라고 가르치는 대로만 보고하라고 해놓은 길만 가는 작가는 되지 않겠다는 그런 선언 말이다.
 

 안현배

ⓒ100miin

예술사학자로서 서양예술을 역사와 문화의 관계 속에서 살피는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예술과 우리 사회를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프랑스에서 고되지만 즐거웠던 11년간의 예술 공부 기간 중에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넋을 잃고 감상했던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기에, ‘예술수업을 통해 예술가와 우리 삶 전반에 대한 공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파리1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사를 공부했고,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소에서 예술과 정치의 사회학을 연구했고, 예술사학과 순수예술사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분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다음에 프랑스 국립예술사연구소에서 ‘19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의 다양성과 발전 과정을 연구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스포츠경향 미술로 보는 인류학을 연재했고,미술관에 간 인문학자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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